KONYA BÜYÜKŞEHİR BELEDİYESİ

역사적 유물

 

알라딘 언덕과 알라딘 회교사원

역사는 우리에게 알라딘 케이쿠밧으로부터 모든 자존심과 함께 말하고 있다. 그의 예술 활동들은 영리한 지휘관과 행정가들과 달리 능숙한 예술가이다. 메블라나 처럼 큰 지식과 인식의 전문가들을 코냐로 초청한 그리고 대접한 왕이다. 그리고 코냐에서 그의 이름이 특별히 불려진 가장 완벽한 유적은 알라딘 언덕의 북쪽에 건축된 셀축 와들의 유명한 성이다. 견고한 성벽안에는 시 정부에서 보호되어진 성벽의 일부만이 오늘날 남아져있다. 그러나 이 언덕위에 아직까지도 현존하는 알라딘회교사원의 아름다움과 함께 견고하게 서있다. 아나돌루 셀축시대 코냐의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옛 회교사원인 이 알라딘회교사원의 건축은 셀축시대의 왕인 뤼크네딘 메수드 1세의 마지막 시대에 시작되어 클르차스란 2세시대에 계속되었고 알라딘 케이쿠밧1세 왕에 의해 1221년 완성되었다. 사원은 이슬람 건축 양식에 의해 건축되었고 천정은 나무와 흙으로 덮여졌다. 비잔틴과 클래식 시대에 속한 41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지어졌고 사원의 가장 신기한 부분들 중의 하나는 민베르(이슬람사원의 설교단)이다. 민베르는 흑단 나무로 만들어졌고 아흐라트 멘굼 베르티에 의해 만들어진 걸작품이다. 타일로 장식된 미흐랍의위에는 타일로 장식된 돔형태의 천장이 넓게 만들어져 있다. 미흐랍 그리고 돔천장의 타일들중 일부는 떨어져 훼손되어있다. 이 사원이 만들어질 때 메블라나가 여기서 설교 했다고 전해진다. 회교사원 옆에는 클르차스란 2세 시대의 분묘가 함께 있다. 이 분묘에는 8명의 셀축시대 왕의 관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인제미나레 신학교

알라딘 회교사원의 서쪽에는 셀축시대의 아타 파히레딘 알리에 의해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을 읽기위해 1254년 만들어진 인제 미나레 신학교가 있다. 건축가는 케뤽 빈 압둘라이고 신학교에는 셀축시대 조각들 중 현존하는 석문위에 기하형학적, 식물모양의 조각장식과 함께 셀축시대 쉬뤼이 서체로 쓰여진 야신과 페티 장식이 있다. 건물의 안쪽에는 마당과 둥근 강단, 교실 그리고 학생 숙소 들이 있다. 건축 기초부분은 돌과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반 피라미드 형태의 삼각형과 열두개의 모서리와 몸통, 군청색 유액 벽돌로 만들어졌다. 1901년 번개가 떨어짐과 함께 일부분이 무너졌다. 1956년 박물관으로 공개된 신학교에는 셀축제국시대, 봉건시대, 그리고 오스만제국시대에 속한 석조, 목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카라타이 신학교

사힙 아타 팔레딘 알리 처럼 예술적인 작품들로 알려진 선택된 국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되는 엠미르 젤라레딘 카라타이에 의해서 1251년에 만든 카라타이 신학교 인제미나레 신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다. 건축가는 모르고 오스만 시대에 까지 사용되어졌으며 19세기 말 폐쇄되어졌다. 아나돌루 셀축시대 타일기술들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있는 카라타이 신학교는 1955년에 타일 유물 박물관으로 개장되었다. 카라타이 박물관에는 베이쉐히르 호수가의 쿠바트아바드 성 발굴에서 발견된 유물과 벽 타일, 타일과 유리그릇들과 함께 코냐 주변에서 발견된 셀축시대와 오스만시대에 속한 타일과 도자기 그릇들, 등잔들과 석고등이 발견 전시되어있다.

 

스르차르 신학교

코냐의 셀축제국시대의 유적들 중 하나인 스르차르 신학교는 1242년 베이레딘 무스리흐에 의해 만들어졌다. 1960년 개장되었고 무덤 기념비 박물관으로 사용된 스르차르 신학교는 타일로 장식된 신학교들중의 하나이다. 코냐시에 국유화된 무덤들중에서 채택되어진 역사와 문화면에서 무덤비석들을 셀축시대 봉건시대 오스만시대로 분류하여 전시되어진다. 별도로 무덤에 사용된 비석들과 형태, 문양, 서체들로 연대순으로 구분되어 전시되어져 있다.

 

사이드레딘 콘에비 회교사원과와 분묘

사이드레딘 콘에비 회교사원은 코냐의 세이 사드레딘 마을에 1274년 사이드레딘 콘에비 이름으로 만들어진 사원으로 사드레딘 콘에비는  원래 말라티야 사람으로 코냐에 이주하여 당대 유명한 회교학자들중 하나로 알려진다. 1207년 말라티야에서 태어나 1274년 코냐에서 사망한 사드레딘 콘에비는 시대의 학자 제바틴으로부터 수업을 받고 회교 지역의 여러종류 문화센터에서 발견된 지식과 학문, 철학적 삶에 가깝게 알려져있다.

코냐에서 하디스(무함마드 언행록)를 읽은 그리고 게렉 무히딘 이븐 아라브의 생각과 해석으로 당대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와 함께 대화들로 눈에 뜨인 사이드레딘은 신비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의 하나였다.

메블라나에 깊은 사랑과 함께 연결되어진 사드레딘 콘에비의 분묘는 사원의 동쪽의 마당에 있다. 열린 분묘의 모양은 기둥들과 하나의 덮개로 이루어져 있다. 분묘의 모양은 셀축시대의 무덤에 비슷하다. 몸통은 열려있고 규칙적인 대리석으로 되어진 분묘는 새장모양의 목조로 원추형이다.

 

셈스이 테브리지 회교사원과 분묘

메블라나 젤라레딘 루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셈스이 테브리지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신학교, 회교사원의 수업과 설교들중 바쁜 메블라나는 셈스와 함께 만난 후 변화되었다. 테브리즈에서 태어난 셈스이 테브리지는 원래 이름이 메블라나 무함메드이었고 셈스이 테브리즈는 정신적인 추구는 메블라나와의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세계에서 외모와 의상에 중요성을 두지않은 셈스, 메블라나와 함께 3년에서 3년반 함께 함으로인해 그의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충분히 대중을 사랑하였다. 메블라나는 셈스이의 우정을 잊지 않았다고 자신이 쓴 시집에 고백하고 있다. 오늘날 코냐에서 셈스는 메블라나 분묘 전에 방문하는 셈스이 테브리지 사원으로 13세기 만든어져 지금까지 이어온다. 현재의 건축물은 1510년 압듈레작오울루 에미르 이스학 베이로부터 메스지드(정규예배를 갖지 않는 작은 회교 사원)와 합쳐서 옛건물을 새롭게 하였다. 그러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회교사원 안의 천정과 외곽은 팔면체의 피라미드 원추형으로 만들었다. 에이반 모형의 무덤 메스지드에는 글들로 장식된 조각과 부르사 반추형으로 되어있다. 다른 면에는 아래 위 각두개씩 창문이 있다. 덮개가 있는 산두카의 아래쪽에는 이전에 우물이 발견된 것을 이야기하여 조사한 결과 여기는 우물이 아니라 미이라가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몸통은 돌로 만들어진 원추형이라며 벽돌로 만들어진 무덤으로 1977년에 보수되었다. 

 

도시 중앙에는 코냐의 변화시기 가운데 장대한 그리고 빛나는 시기에 반사되어진 많은 회교사원과 신학교등이 있다.

 

이플릭치 회교사원

알라딘 거리에 있다. 셈세딘 알툰아바에 의해 1201년 이후에 만들어졌고 소무주 에부베키르에 의해 1332년 넓혀지고 새롭게 되었다. 사원은 섬유시장에 있는 것으로 인해 이플릭치(섬유상)회교사원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51-1960년에는 클래식 유물 박물관으로 사용되었고 사원으로는 1960년에는 다시 예배장소로 사용되었다.

 

사힙 아타 회교사원과 큘리예

아나돌루 셀축 국가수상으로부터 사힙 아타에 의해 1258-1283년 사이에 건축된 작은 사원, 무덤, (여인숙), 하맘(공중목욕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가는 압둘라 빈 켈뤽이다.

 

셀리미예 회교사원

메블라나 박물관 서쪽에 건축된 사원으로 셀림2세왕의 아들 시대에 시작되어 1558-1567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셀리미예 회교사원은 오스만 클래식 건축 중 코냐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물이다. 북쪽에는 6개의 기둥과 예외적으로 7개의 돔형 천정, 마지막 집회 장소 그리고 정문이 남아있다. 마지막 집회장소 오른쪽 왼쪽에 하나의 쉐레페리(예전에 애잔을 읽던 미나렛 안쪽 장소) 두개의 첨탑이 있다.

 

아지지예 회교사원

코냐 시내에 있다. 잘라진 돌로 만들어진 후기 오스만시대의 건축물의 가장 아름다운 예중의 하나이다. 1671-1676년 아시에 쉐히 아흐메드 손으로 만들어진 회교사원은는 화재로 인해 1867년 술탄 압듈라지즈의 엄마 페르테니할 이름으로 새로 지금의 회교사원로 만들어져 그 이름으로 알려졌다. 터키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사원는 6개의 대리석 기둥과 3개의 원형돔, 뒷면에 2개로 늘어선 사드리반 2개의 첨탑이 눈에 띄인다. 위에는 넓은 돔으로 덮혀져있다.

 

쉐라페틴 회교사원

휴큐메트건물의 남쪽면에 있다. 쉐라페틴 회교사원은 처음 12세기 쉐히 쉐라페틴에 의해 만들어졌고 1336년 완전히 무너져 차부쉬 올루 메흐멧에 의해 다시 건축되었다. 사원의 몸체는 잘라진 돌들로 만들어졌고 큰 하나의 돔으로 지붕이 만들어졌다. 돔은 10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고 남쪽에 반 돔과 함께 연결 지탱하고 있다. 미랍은 외부로 향해있다. 남쪽부분을 제외한 다른 방면은 2층의 발콘으로 되어져있다. 사원안은 서체와 자수들로 장식되어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민베르와 미히랍은 가치있는 예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중에 첨부된 하나의 쉐레페가 있는 첨탑이 있다.

 

카푸 회교사원

코냐의 중심지인 보석거리에 위치해있다. 원래 이름은 이히야히에이며 옛 코냐성문들 주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카푸(대문)회교사원이라고 불리워진다. 1658년에 메블라나 생도들 중에 한명인 피르 휴세인 첼레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후 무너진 회교사원을 1811년 코냐 회교부장 에이드압두라흐만에 의해 복구되었으며 1867년 화재로 인하여 이 회교사원은 주변의 자선재단건물들과 함께 소실 되었다. 본 새 건물은 1285년 지어진 왕관의 문위에 지어졌다. 카푸회교사원은 코냐에 소재하고 있는 오스만시대의 현존하고 있는 회교사원들중 가장 큰 회교사원이다. 북쪽에는 10개의 대리석으로 지탱되어진 높고 납작한 아치형태의 문이 있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한 개의 문들이 있다. 다듬어진 돌들로 만들어진 회교사원의 바깥쪽 지붕과 안에는 크고 작은 8개의 돔형 지붕들로 덮혀져 있다.   

 

하즈 베이스자데 회교사원

코냐출신의 가장 유명한 회교학자들중 하나인 하스베이스자데의 이름을 따서 1988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시내중심지에 있고 회교사원의 주변에 공연장, 게스트하우스, 회교 교구등으로 구성되어진 사원으로 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3명이 앉을 수 있는 두개의 첨탑은 78m 이며 근방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라는 특징이 있다.

 

에쉐레프올루 회교사원

에쉐레프올루 봉건시대의 기념품인 에쉐레프올루 회교사원은 베이쉐히르시의 중심지에 있으며 우리에게 베히쉐히르의 과거를 기억나게 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진 직사각형의 설계가운데 만들어진 회교사원은 북쪽에 있는 정문 외에도 동쪽과 서쪽에도 두개의 문이 더 있다. 셀축제국의 왕 술탄 산자르의 명령에 의해 1134년에 만들어졌으며 지금의 모습은 1297년 에쉐레프올루 슐레이만에 의해서 재건축되었으며 회교사원 내부에 있는 조각된 목조술은 세계에서 유명한 예술품중의 하나이다.

 

다양한 종교에 의해 통치되어진 코냐의 종교건축물은 일부 교회 건축물에도 발견되어진다.

 

실레 성 헬레나 교회

아나돌루 문명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역사와 문화적인 면에서 한 초기 기독교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중심지였다. 주후 327년 비잔틴 제국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성지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가는중 코냐에 들렸을 때 초기기독교시대에 속한 조각되어진 교회 건물을 보게되었고 기독교인들에게 실레지역에 교회 건물을 세우는 것으로 결정했다. 성헬레나 교회는 수세기를 걸쳐 보수되어지면서 지금까지 오게되었다. 교회 내부에 있는 문입구에는 그리스알파벳으로 적혀진 터키어 교회건물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현판이 있다. 이 현판은 1833년에 만들어졌다. 같은 현판에는 교회의 4번째 보수공사를 한 메지디왕 시대 때로 추정되어지는 3개의 문장이 발견되어진다. 교회건물은 고르게 다듬은 실레 지역 돌들로 만들어졌다. 마당에는 바위위에 조각되어진 동굴방들이 있다. 교회의 북쪽에 열려진 문을 통해서 바깥 복도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는 여성들의 모임장소로 가는 돌계단이 있다. 교회의 원지붕은 4개의 기둥로 받쳐져 3개의 연결부분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지붕의 연결부분과 기둥에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열두제자들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있다.     

 

흰 수도원

실레에 흰수도원은 다른 이름으로 하기오스케리톤이라 하며 이와 더불어 많은 수도원들이 성직자에 의해서 바위 위에 만들어졌다. 넓은 동굴형태의 바위 위에 만들어졌으며 동굴 안에 많은 방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곳의 수도원들은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수도원들중의 하나이다. 이곳에 있던 미카엘 호메노스와 미카엘의 아들 아브라함의 돌무덤은 코냐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져 있다.

 

1001 교회

코냐와 카라만의 초원중간에 높은 검은산 북쪽에 위치한 마덴쉐히르 지방 사람들에 의해 1001 교회로 불리워지고 있다. 주후 4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많은 교회와 건축물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바울 사도도 갑바도기아에 가는 길에 이 지역에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많은 종류의 교회와 군사용 수로, 집들이 형성되어 있어 1001년 교회의 집들은 마치 2000년전 그모습 그대로를 아직까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코냐에는 크고 작은 많은 회교예배처소들과 무덤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하스베이 다률후파즈

가지알렘 마을에 있다. 카라만 올루 메흐멧2세 시대 때 하지 하스베이의 아들 메흐멧베이에 의해 1421하프즈들의 집으로 만들어졌다. 벽돌로 따은 듯한 사각형 모양으로 구성되어졌으며 위 삼면은 갂은 돌들로 덮혀져 있다. 입구가 있는 서쪽 방향은 다듬어진 대리석으로 장식되어져 있다. 허리부터 지붕까지는 클래식 삼각형 모서리이며 삼각형중 두면이 맞닿는 모서리에는 초록색 타일로 장식되어져 있다. 내부에는 타일로 장식되어진 예쁜 미히랍도 있다.

 

메람 하스베이 메스지디

코냐의 역사적인 초록공간인 메람에 있다. 하스베이의 아들 메흐멧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듬어진 돌들로 만들어졌으며 윗부분은 흙으로 덮혀져 있다. 강단은 매우 단순하다. 회교사원의 옆에 다률후파즈도 있다.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어린이 도서관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초록 분묘

4개의 기둥위에 만들어진 셀축시대의 걸작품이다. 초록회교사원의 외부는 16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원추형모양이다. 이 분묘에는 메블라나와 벨레드왕이 잠자고 있다. 무덤위는 압둘하미트2세가 선물한 금은으로 장식되어진 덮개로 덮혀져있다. 분묘의 동쪽에는 울리마왕의 무덤이 있다. 셀축시대의 목재술이 반영된 비목이 있다. 뒷부분이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마치 서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비목은 메블라나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후에는 없애버렸다.  

 

타부스바바 분묘

코냐의 유서 깊은 녹지 공원인 메람에 있다. 알라딧 케이쿠받 1세때 코냐에서 사망한 쉐이 타부스 메흐멧 엘힌디의 묘이다. 돌과 벽돌로 만들어졌다. 단순한 지붕의 형태를 가진 유물이다.

 

아테쉬 바쉬 벨리 분묘

옛 메람 길에 있다. 클래식 셀축시대 무덤들의 형태이다. 분묘는 1285년에 사망한 메블라비 아테쉬 바즈 유수프에 속한 것이다. 다듬어진 돌들로부터 8개의 모서리로 된 몸통 팔각형 피라미드 벽돌로 덮혀진 원추형으로 만들어졌다. 돌틀로 되어진 아치형 문의 밑에 무덤으로 내려가는 문이 있다.

 

교메취 하툰 분묘

뭇살라 공동묘지에 있다. 셀축시대 무덤들과는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지하와 둥근 아치형 기둥이 있다. 많은 부분이 다듬어진 돌들과 일부는 벽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보여지는 모습은 성을 연상하게 한다. 기둥에는 모자이크처리가 되어져 있다. 아나돌루 셀축제국의 류크네딘 클리치 아슬란 왕의 부인 교메치 하툰4세의 묘라고 이야기 되어진다.

 

알리 가브 자비예시와 분묘

타를라 마을에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신학교에서 보여진다. 15세기경에 살았던 알리가브바바가 매장되어 있다. 입구와 4개의 문으로 되어있다.

 

나스레딘 호자 분묘

큰 철학자이자 해학자인 나스레틴 호자는 시브리히사르에서 태어나 앜쉐히르에 와서 정착하였고 그곳에서 인생을 마감하였다. 사람들을 웃길 때 생각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긴 나스레딘 호자의 묘는 앜쉐히르시의 동쪽에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묘지에 있다. 지금의 보수는 1905년 앜쉐히르시의 시장인 슈크르에 의해 원형태를 잃어버린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어졌다. 묘의 중심부분만 원형태가 보존되어졌다. 비석에는 희학자의 생애를 상징하는 히즈라683(1284)년의 사망일자를 꺼꾸로 386년으로 적어놓았다. 

 

이렇게 대문명을 이끌어온 코냐는 서민건축의 가장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몇 안되는 도시들 중 하나이다.

 

자자딘 한

알라딘 케이쿠밧 왕시대 때 주후 1236년 셀축제국의 사데틴 쿄펙 제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여름별장과 겨울별장을 섞은 형태의 정원식으로 만들어졌다. 규모는 세로104m  가로62m로 만들어졌다. 돌건물의 외부벽은 이슬람 전 시대의 건축기술들중 일부를 사용했다. 코냐에서 악사라이로 가는 길 25km 선상의 퇴멕면에 위치해 있다.

 

호로즈루 한

1248년 지금의 코냐 악사라이 아스팔트 8번도로 선상에 겨울별장으로 만들어졌다.

 

오브룩 한

아나돌루 셀축시대 때 무역로 위에 지어진 한(숙박시설)들 중 하나이다. 이 한의 벽들은 옛 비잔틴제국시대 때의 마을에서 사용한 돌들을 가져와서 만들어졌다. 코냐와 악사라이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세워져 있다. 

 

술탄 하맘(공중목욕탕)

라렌다 도로면에 아타큘리예시에 소속된 술탄 목욕탕은 지금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마흐케메 하맘

세르페딘 사원과 셈스테브리즈 사원사이에 있는 오래된 터키민족들의 정결문화를 보여주는 이 목욕탕은 지금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메람 하맘

메람의 역사다리의 끝부분에 있는 봉건시대 때 만들어진 메람 목욕탕은 지역주민과 외부인들의 방문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